*세계정세
- 1차 세계대전 : 1914~1918
- 러시아 혁명(11월 혁명, 1917) : 볼셰비키를 지원한 레닌이 소비에트 정권을 수립(세계 최초 공산국가) cf.1920` 국내 사회주의 영향
- 세계 졍제 대공황(1929) : 공급초과,독일/일본/이탈리아는대외침략과 전체주의로 대공황 극복
- 2차 세계대전 : 1939~1945, 연합국vs추축국 cf.1941 태평양전쟁, 한국의 건국준비 시작
*일제강점기 흐름
- 1910` : 헌병경찰 통치(무단통치) cf.토지 수탈
- 3.1운동
- 1920` : 기만적 유화 통치(문화통치) cf.쌀 수탈
- 대공황
- 1930` : 1930~1937, 만족말살 통치(내선일제, 병참기지화)
- 만주사변, 중일전쟁
- 1940` : 1938~1945, 민족말살 통치(국가 총동원령, 황국신민화)
*일제강점기 시기별 교육정책
- 1차 조선 교육령(1911) : 우민화 교육(보통교육, 실업교육), 서당규칙, 사립학교 규칙
- 2차 조선 교육령(1921) : 보통교육 교육연한 연장(4>6년), 대학 설립 허가, 조선인과 일본인의 공핵교육
- 3차 조선 교육령(1938) : 조선어는 수의과목(선택과목), 학교명 조정(보통학교>소학교,고등보통학교>중학교) cf.국가총동원령(1938)
- 4차 조선 교육령(1943) : 학도지원병제도(1943), 조선어 교육 완전 폐지
cf. 사료
2차 : "제2조, 국어(일본어)를 상용하는 자 ~ 제3조, 국어를 상용치 아니하는 자 ~"
3차 : "제1조, 소학교는 ~ , 조선어는 수의과목으로 한다." cf. 국가총동원령(1938)
*국권피탈~무단통치시기 연결
- 한일의정서(1904.2.) : 러일전쟁 군지 계약
- 1차 한일협약(1904.8.) : 고문정치
- 열강의 묵인(1905) : 가쓰라테프트 밀약(7월), 2차 영일동맹(8월), 포츠머스 강화조약(9월)
- 을사늑약(1905.10. 2차 한일협약) : 통감정치, 외교권 박탈
- 보안법(1907) : 언론, 집회, 결사 제한
- 신문지법(1907) : 언론 탄압
- 기유각서(1909) : 사법권 박탈
- 출판법(1909) : 언론, 출판 탄압
- 경찰권 박탈(1910.6.)
- 경술국치(한일병합조약, 1910.8.) : 총독(총독부)
*조선총독부(1910~1945)
- 데라우치 마사타케 : 마지막 통감이자 첫번째 총독(=일제강점기 시작), 105인 사건
- 사이토 마코토 : 강우규 의거
- 우가키 가즈시게 : 농촌진흥운동
- 미나미 지로 : 국가 총동원령
- 중추원(의결기구) : 친일인사 명예직, 3.1운동까지 단 한번의 회합도 없던 형식적 기구
cf. 중추원
- 고려 최고 관청
- 독립협회
- 총독부 산하
*무단통치 시기 수탈
- 헌병경찰제 : 조선태형령(조선인에 한해 재판없이 태형 가능), 관리/교원이 칼을 차고 제복을 입음
- 보안법, 신문지법(1907)
- 동양척식 주식회사(1908)
- 출판법(1909)
- 회사령(1910) : 조선 총독의 허가를 받아야 회사 설립 가능(민족자본 억제)
- 어업령, 삼림령(1911)
- 토지조사 사업(1912~18)
- 지세령(1914)
- 광업령(1915)
*동양척식 주식회사(1908)
- 황무지 개간, 경제 침탈 선두
- 1926 나석주 폭탄 의거
*토지조사 사업(1912~18)
- "제 4조. 토지 소유자는 조선 총독이 정하는 기간 내에 주소, 씨명, 명칭 및 소유지의 소재, 지목, 자번호, 사표, 등급, 지적, 결수를 토지 조사 국장에게 신고해야 한다."
- 신고하지 않은 토지 몰수
- 지세 확보 : 토지 조사령 > 지세령1914
- 탈취한 토지 : 신고하지 않은 토지, 문중의 공유지 등 소유자가 불분명한 토지, 대한제국 정부 소유지, 황실 소유지, 궁가에 지급한 중장초, 역분토(역의 경비를 충당), 황무지
- 총독부가 국내 최대 지주가 됨
- 일본인 이주민, 일본인 지주 증가
- 소작 농민의 관습적 경작권(소작권) 부정 : 지주의 소유권만 인정
- 공유지에 대한 농민의 입회권 부정
*무단통치 시기 독립운동
*항일 비밀결사
- 대한독립 의군부(1912) : 고종의 밀명으로 설립, 복벽주의
- 조선국권 회복단(1915) : 계몽운동, 혁신 유림 중심
- 대한광복회(1915) : 친일부호 처단, 공화제
- 의병장 채응언(1879~1915) : 동일한 시기에 활동
- 대동단결선언(1917) : 순종이 내려놓은 국권은 일본이 아니라 국민에게 있다 cf.1910시기라는게 중요
*대한독립 의군부(1912)
- 임병찬(을사의병),
- 고종의 밀명으로 설립 > 국권 반환 요구서 제출 시도 > 사건 발각으로 체포
- 복벽주의 : 대한제국 회복
*대한광복회(1915) : 의병+계몽
- 박상진
- 풍기광복단(의병)+조선국권 회복단(계몽) = 대한광복회
- 친일부호 처단 : 관찰사 장승원, 도고면장 박용하 처단 > 독립군 사관학교 설립
- 공화제
- 7대 투쟁 방향 : 부호의 의연 및 일본인이 불법 징수하는 세금 압수, 남북만주에 사관학교 설립
- 선언문 : "우리는 대한의 국권을 회복하기 위하여 죽음으로써 원수 일본을 완전히 몰아내기로 천지신명에게 맹세한다."
cf. 친일부호 처단 = 풍기광복단+조선국권회복단(의병+계몽), 공화제
*국외항일운동 : 독립운동 기지 건설
1911 : 서간도 경학사(신민회), 북간도 중광단(대종교), 연해주 권업회(이상설)
1912 : 상해 동제사
*서간도(삼원보)
- 양기탁, 경주 이씨 6형제(이화연, 이상룡 등) 등 신민회 세력
- 경학사(1911) : 농업 사업+군사훈련(신흥강습소)
- 부민단(1912)
- 한족회(1919) : 신흥무관학교
cf. 신민회(1907~10) - 경학사(1911, 신흥강습소) - 부민단(1912) - 한족회(1919, 신흥무관학교)
신민회 : 오산/대성학교, 평양자기회사, 태극서관, 조선광문회, 105인 사건으로 해체
*북간도
- 대종교 세력
- 중광단 : 대종교 만주 지부


*연해주 : 이상설
- 1905 : 을사늑약 반대상소
- 1906 : 서전서숙(in 만주)
- 1907 : 헤이그 특사, 귀국 도중 고종의 강제 퇴위로 러시아 밀산부 한흥동으로 향함
- 1910 : 연해주에서 13도 의군+성명회 조직, 도중에 경술국치
- 1911 : 권업회
- 1914 : 대한광복군정부(최초의 망명정부), 정통령 이상설/부통령 이동휘 > 1차 세계대전으로 상해로 향함
- 1915 : 상해 신한혁명단 가입
- 1917 : 사망
*중국 관내
- 동제사(1912) : 신규식, 신치호
- 신한혁명당(1915) : 이상설 등
- 신한청년단(1918) : 여운형, 신채호, 김규식 등이 조직 > 임시정부의 전신으로 임시정부 수립기반 조성+파리 강화회의에 김규식 파견
*미주지역
- 대한인국민회(1909) : 장인환, 전명윤 cf.스티븐스(제1차한일협약1904 외교고문) 암살(1908)
- 한인소년병학교(1909), 대조선국민군단(1914) : 박용만
- 흥사단(1913) : KoreanYoung Academy, 신민회 청년조직 청년 학우회 주도+안창호
cf. 무장투쟁 : 이동휘, 신채호, 박용만
*1910` 연도 정리 : 시기는 10/20/3-40만 구분, 인물/지역 구분
1904 한일의정서, 1차한일협약
1905 열강의 묵인, 을사늑약
1907 보안법, 신문지법
1908 동양척식주식회사, 회사령
1909 기유각서, 출판법, 하얼빈 의거, 대한인국민회(장인환&전명윤), 한인소년병학교
1910 안중근 의사 사형, 회사령, 경찰권 박탈, 이상설 13도의군+성명회, 경술국치
1911 어업령, 삼림령, 서간도 경학사, 북간도 중광단, 연해주 권업회
1912 토지조사사업(~18), 대한독립의군부(복벽주의), 상해 동제사, 경학사(신흥강습소)>부민단
1913 흥사단
1914 지세령, 대한광복군정부(최초의 망명정부), 대조선국민군단
1915 광업령, 조선국권회복단, 대한광복회(의병+계몽), 신한혁명단 +의병장 채응언
1917 대동단결선언
1918 신한청년단(임시정부 전신)
1919 부민단>한족회(신흥무관학교)
*문화통치 시기 표현
- 1920년대
- 3.1운동 이후
- 사이토 마코토 시정방침 이후 : "요컨데 문화적 제도 혁신으로 조선인을 유도함으로싸~ 장차 문화의 발달(창달)과 민력의 충실을 기해 정치상, 사회상의 대우에서도 내지인과 똑같은 취급을 해야한다는 것이 궁극적 목적이다."
*3.1운동
*배경
- 러시아 혁명 이후 레닌의 식민지 해방 지원 선언
- 1차 세계대전 이후, 파리강화회의(1919~1920)에서 윌슨의 민족자결주의(승전국의 식민지 제외)
- 상해 신한청년당이 파리강화회의에 김규식 파견 : 파리 강화회의 도중 신한청년단은 임시정부가 되며 임시정부의 첫 해외파견인사가 됨(이후 외교부 장관 역임)
- 대한독립선언(1918, 무오독립선언서) : 조소앙, 길림성(간도), "독립군아 일제히 봉기하라! ~ 개, 돼지같은 일생을 누가 구차히 도모하겠는가?" cf.조소앙 : 삼균주의
- 2,8 독립선언 : 도쿄 조선청년 독립단
- 고종 붕어
*전개
- 독립선포 : 고종 인산일에 민족대표 33인이 독립선언서(기미독립선언서) 발표(스스로 자수하고 체포당함 : 만세운동X)
- 시위 확산 : 탑골공원에서 대기하던 학생과 시민이 만세 시위 전개
- 1단계 : 학생 주도, 독립 선언서 배포, 비폭력 투쟁(맨손, 맨주먹)
- 2단계 : 3.10.~ 상인+노동자 참여, 철시, 파업
- 3단계 : 3.15.~ 농민 참여, 면사무소와 헌병 주재소 습격(폭력 투쟁)
- 기미독립 선언서 공약 3장(한용운)
- 1. 오늘날 우리의 거사는 정의, 인도, 생존, 존영을 위하는 민족적 요구이니~
- 1. 최후의 1인까지, 최후의 1각까지 민족의 정당한 의사를 쾌히 발표하라
- 1. 일체의 행동은 질서를 가장 존중하여~
*결과, 영향(3계기 1영향)
- 일본의 학살 : 유관순 순국, 제암리 학살사건(1919.4.) " 화성 제암리에는 전주민을 교회에 집합, 감금하고 불을 질러 학살하였다."
- 무장 독립운동을 본격적으로 유발하는 계기
-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계기 : 조직화, 체계화의 필요성
- 문화통치 계기
- 중국 5.4운동, 인도 비폭력 무저항운동, 베트남/필리핀/이집트 해방운동에 영향
*문화통치의 기만성
- 언론, 출판의 자유 부분적 허용 : 동아일보, 조선일보 발간 <> 검열 강화, 삭제, 압수, 벌금, 정간
- 집회, 결사의 자유 부분적 허용 : 집회, 결사의 자유+참정권 <> 친일파 양성(도에 평의회, 부와 면에 협의회 설치)
- 보통경찰제 <> 경찰 관서와 경찰 수 3배 이상 증가, 고등경찰(사복경찰)제도 실시
- 치안유지법(1925) : 조선과 일본 모두 시행("1조. 국체를 변혁, 또는 사유재산제를 부인할 목적으로 결사를 조직하거나~")
*경제적 수탈
- 산미증식계획 : 1920~1934, 1940
- 회사령 철폐(1920) : 허가제 > 신고제, 일본회사 설립이 쉽도록 변경
- 연초 전매령(1921) : 연초(담배) 전매제 실시
- 관세 철폐령(1923) :회사령 철폐와 함께 물산장려 운동을 유발하는 계기 cf.1876강화도조약(무관세), 1883조일통상장정(관세조항)
*산미증식계획
- 1차 세계대전(무기 장사) 이후 급격한 공업화로 쌀부족 > 쌀폭동(1918)
- 1차(1920, 1921~1925) : 실제로 생산량은 늘었으나 목표량에 도달하지 못함 > 수탈만 강화됨, 1925년 자본 부족으로 중단(1인당 쌀 소비량 감소, 만주 잡곡 수입)
- 2차(1926~1934) : 경제공황
- 3차(1940) : 중일전쟁(1937) 발발로 군량미 수탈 > 고선을 쌀 생산기지로 이용, 쌀 단작화(미곡 단작형)으로 기존 농업 생산 체계 파괴
cf. 1차/3차 비교
*국내 항일운동
- 1917 러시아 혁명의 결과로 1920년대 초 사회주의 사상 유입, 계급 해방론, 경제 결정론
- 6.10만세운동(1926) : 순종 인산일, 민족 유일당 운동 계기(신간회 결성에 영향)
- 광주학생 항일운동(1929) : 학생 비밀결사 활약, 신간회가 활동을 지원
- 사회주의 계열 운동(저항운동) : 소년, 여성, 형평, 농민&노동운동
- 민족주의 계열 운동(애국 계몽 운동이 활발) : 물산장려, 민립대학설립, 문맹퇴치 운동
- 민족 유일당 운동 : 신간회
*6.10만세운동(1926)
- 순종 인산일에 학생과 사회주의자들이 만세운동 계획 cf.3.1운동은 고종 인산일
- 민족주의 세력과 협력 : 민족 유일당 운동 계기 > 신간회 결성에 영향
- "만세 만세 조선독립 만세"
- 학생 주장 : "조선은 조선인의 조선이다! 학교의 용어는 조선어로! 학교장은 조선 사람이어여 한다!"
- 사회주의자 주장 : "조선인 관리는 일제 퇴직하라! 공장노동자는 총파업하라! ~ 소작권은 이동치 못한다!"
*광주학생 항일운동(1929)
- 성진회, 독서회 등 학생 비밀결사 활약
- 일본 학생이 조선인 여학생을 희롱 > 일본 경찰의 차별적 대처 > 연대적 학생 시위(체포자만 천여명)
- 신간회의 활동지원 : 진상 조사단 파견, 민중대회 개최 계획 > 전국 항일운동으로 발전 cf.중앙 집행위원장 허헌
- 격문 : "학생 대중이여, 궐기하라! ~ 1. 검거자를 즉시 우리들이 탈환하자,"
cf. 신간회 : 6.10만세운동으로 결성 > 광주학생 항일운동 지원
*사회주의 계열 운동
- 소년운동 : 어린이를 인격적으로 대우하자는운동, 천도교(동학) 소년회(방정환) 어린이날 제정(1922.5.1.)
- 여성운동 : 조선여성동우회(1924) >이후 민족주의 계열과 근우회 결성
- 형평운동 : 조선 형평사, 진주에서 시작, 백정에 대한 차별 철폐 요구
- 농민&노동운동 : 조선노농총동맹, 소작쟁의&노동쟁의
*형평운동
- 조선형평사 : 1927~1931
- 진주에서 시작
- 백정에 대한 차별 철폐 요구 : 조선총독부가 백정출신 호적에 도한(소잡는 놈)으로 기재하거나 붉은 점을 찍음
- "공평은 사회의 근본이고 애정은 인류의 본령이다. ~ 계급을 타파하고 모욕적인 칭호를 폐지하여 우리도 참다운 인간이 되는 것이 우리의 주장이다." cf. 갑오개혁 신분제 철폐, 관민공동회 백정 박성춘 연설
*농민&노동운동
- 조선노농총동맹 > 1927년 노동총동맹/농민총동맹으로 분리
- 1920 소작쟁의 : 생존권=경제권 투쟁, 전남 심안군 임태도 소작쟁의(1923~24)
- 1930 소작쟁의 : 항일운동=정치적 투쟁, 규모가 커지고 격렬해짐
- 1920 노동쟁의 : 생존권, 원산 노동자 총파업(1929)
- 1930 노동쟁의 : 항일운동, 격렬해진 노동운동, 지하조직(적색노동조합)을 갖츤 노조 결성
cf.
1910, 1940에는 소작/노동쟁의 X
1920년대는 쟁의 이름
1930년대는 절정, 격렬, 적색 노동조합(1934 조선농지령)
1920/1930 구분
*민족주의 계열 운동
- 여성운동 : 조선여자교육회(김마리사, 1920) > 이후 사회주의 계열과 근우회 결성
- 물산장려운동 : 국산품 사용 장려 운동
- 민립대학 설립운동 : 고등교육을 통한 민족역량 강화
- 문맹퇴치운동 : 언론기관 중심, 조선일보, 동아일보
*물산장려운동
- 1920년대 대표 운동
- "내 살림 내 것으로, 우리 것, 우리 힘, 우리 제조로"
- 회사령 철폐로 일본회사 다수 설립, 관세 철폐로 일본 제품 수입 증가
- 주도 : 조선물산장려회(1920, 조만식, 평양) cf.국채보상운동(1907) : 대구 / 형평운동(1927) : 진주
- 전개 : 자작회, 토산 애용 부인회, 기관지 <산업계>
- 한계 : 자본가에게 이익이 집중(사회주의자 비판)
*민립대학 설립운동
- 고등교육을 통한 민족역량 강화
- 2차 조선교육령(1922)으로 대학설립 가능해짐 cf.1910년대 조선 대학들은 이름을 고등학교로 바꾸거나 폐교됨
- 조선교육회가 중심 : 이상재를 대표로 민립대학 기성회 결성(조선교육회 내부조직)
- "한민족 1,000만명, 한 사람 1원 씩" cf.국채보상운동 : 1,300만원
- 결과 : 일제가 1924년 경성제국대학을 우선 설립하여 인력 유출로 실패
*문맹퇴치 운동
- 개량 서당+야학 설립 > 일제 탄압 > 언론기관 중심 문맹퇴치운동 전개
- 조선어학회 적극 참여
- 조선일보(1929~34) : 문자보급운동
- 동아일보(1931~34) : 브로나드운동(민중속으로), <상록수>(위생운동+문맹퇴치)
cf. 문맹퇴치운동 시작은 1920, 출제는 1930

*민족유일당 운동
-민족주의 분열
- 이광수 <민족적 경륜> : 동아일보에 게재, "허용되는 범위 내에서 정치적 결사를 조작해야 한다는 것이 우리의 주장이다."
- 비타협적 민족주의 : 조선민흥회
- 타협적 민족주의 : 이광수, 최린 > 자치론, 참정론
-사회주의 위기
- 치안유지법(1925)
- 조선공산당사건(1925~26) : 정우회(1926) 결성
- 정우회 선언 : "민족주의적 세력에 대해서는 그 부르주아 민주주의적 성질을 명백하게 인식하는 동시에 또 과정적 동맹자적 성질도 충분히 승인하여 ~"
*신간회(1927~1931)
- 좌우합작단체(민족협동 전선)
- 6.10만세운동의 영향+정우회 선언
- 회장 이상재(민족주의)+부회장 홍명희(사회주의)
- 3대 활동강령 : "우리는 정치, 경제적 각성을 촉구한다. 우리는 단결을 공고히 한다. 우리는 기회주의를 일체 부인한다."
- 이광수 <민족적 경륜> 비판 : 자치론, 참정론 배격
- 원산노동자 총파업 지원(1929), 광주항일학생운동 진상조사단 파견(1929)
- 코민테른 12월 테제(1928) : 사회주의 진영 이탈
- 해소대회 개최(1931) : 결합 가능성을 남김
cf. 결성 계기 1926, 결성 1927, 해소 원인 1928, 활동 1929, 해산 1931
*근우회(1927~30)
- 신간회 자매단체(좌우합작)
- "우선 우리 조선 자매 전체의 역량을 공고히 단결하여 운동을 전반적으로 전개하지 않으면 아니된다. ~ 조선 자매들아! 미래는 우리의 것이다!"
*무장항일투쟁
- 주로 한반도 서북지역에서 활동, 만주 독립군과 연계
- 천마산대 : 3.1운동 직후 결성 > 1920년 만주로 이동, 광복군 사령부에 흡수
- 구월산대 : 1920.6. 대한민국 임시정부 지원단체, 대한독립단(만주)의 국내 파견 부대 중 하나
- 보합단 : 1920.8.
cf. 1920에도 국내 무장투쟁이 존재했고 저 단체들이 1920단체라는 것 정도만 알아두기
*국외항일운동
*대한민국임시정부
-수립과정(1919.4.)
- 대한 국민 의회(노령정부, 연해주) : 대통령 손병희
- 상해 정부(신한청년단, 상해) :국무총리 이승만
- 한성정부(서울) : 집정관 통재 이승만
- 외교 독립론을 수용항 상해 정부로 통합
-형태
- 최초의 민주공화제 정부
- 3권 분립 : 입법기관 임시 의정원(초대의장 이동녕) cf.초대 국회의장 이동녕
- 초대 인사 : 대통령 이승만, 국무총리 이동휘 cf.이동휘 : 1914 연해주 대한광복군정부 부통령, 무장투쟁
- 이념 : 자유주의, 삼균주의(1940) cf. 사회주의는 X / 조소앙 : 무오독립선언서, 삼균주의
-군자금 조달
- 애국공채(독립공채) 발행
- 연통제 : 비밀행정조직
- 교통국 : 통신기관
- 1922에 발각, 이후 충칭으로 임시정부가 이사하는데 그때는 존재X = 상해에만 존재
-직속 군사조직
- 서로군정서, 북로군정서(1919)
- 광복군 총영(1920)
- 육군 주만 참의부(1923) cf. 정의부, 심의부는 임시정부 직속X
- 한국 광복군(1940)
-외교활동
- 파리위원부 : 김규식(파리강화회의 참석=임시정부 최초의 외교 인사 파견)
- 구미위원부 : 이승만(국제 연맹, 워싱턴 회의)
- 다른나라 위원부는 없음
-언론문화사업
- 독립신문 : 기관지 cf.독립협회1896 독립신문 : 반청, 반러
- 임시 사료 편찬회(1919) > 사료 편찬소(1921, 박은식) cf. 임시정부 2대 대통령 박은식(임시정부 대통령은 2대까지 존재), 임시정부 도서 편찬 = 박은식
-위기
- 연통제와 교통국 노출
- 이승만이 국제 연맹에 위임 통치 청원
- 국민대표회의(1923) : 창조파(신채호)/개조파(안창호)/현상유지파(박은식, 김구) > 결렬, 독립운동 세력의 분열 및 이탈 가속화
-위기 극복
- 2대 대통령 박은식 : 대통령제 > 국무령제
- 한인애국단 : 1930년대부터 김구의 한인애국단 활약으로 활기

-임시정부 지도체제 변화
- 제1차(1919) : 대통령제(이승만, 박은식)
- 제2차(1925) : 국무령 중심 내각 책임제(이동녕, 이상룡)
- 제3차(1927) : 국무위원 집단 지도체제 cf.1930년대 브로나드 운동
- 충칭 이동
- 제4차(1940) : 주석 중심 단일체제(김구)
- 제5차(1944) : 주석, 부주석 지도체제(김구, 김규식) cf. 김규식 부주석 = 임시정부 말기
*의열 투쟁 : 일제 요인 암살+시설 파괴
*1910년대 노인동맹단(1919)
- 김치보, 연해주
- 노인단(=만 46세 이상)
- 박은식을 중심으로 조직
- 강우규 의거 : 사이토 총독 부임일 남대문 앞에서 총독의 마차를 향해 영국제 수류탄 투척 > 큰 부상을 입힘
*1920년대 의열단(1920~26)
1919년 약산 김원봉을 비롯한 13명의 청년이 만주에서 결성 > 상해로 이동
-활동
- 박재혁(1920) : 부산 경찰서 폭탄 투척
- 최수봉(1920) : 밀양 경찰서
- 김익상(1921) : 조선총독부(+시가전)
- 김익상(1922) : 상해 황포탄에서 일본 육군대장 다나카 암살 기도
- 김상옥(1923) :종로 경찰서(고문 앞잡이) cf.이후 의열단 선언이 행동강령으로 등장
- 김지섭(1924) : 제국의회 폭탄 투척 계획 >제국의회 개최 취소 > 일본 황궁 앞 이중교(니주바시) 폭탄 투척
- 나석주(1926) : 식산은행, 동양 척식 주식회사 폭탄 투척 > 의열단 마지막 활동
cf.
의열단 선언은 김상옥 의거 이후
1923년 관도 대지진, 관도 참변으로 제국의회 개최 취소
-행동강령 : 단재 신채호 <조선혁명선언> = 의열단 선언
- 1923년까지 연이은 실패에 사기저하로 김원봉이 신채호를 만나 글을 써달라고 부탁
- 약산이 단재에게 부탁 = 단재가 약산에게 글을 써줌
- "강도 일본이 ~ "
- "폭력으로써 갚을 것이다."
- "민중은 우리 혁명의 대본영이다."
- "이상적 조선을 건설할지니리."
-전환
- 개별 투쟁 한계 인식 : 조직적, 대중적 무장투쟁으로 전환(군대)
- 중국 황포 군관학교 입학(1926) > 조선 혁명간부학교 설립(1932)
- 민족혁명단(1935) : 의열단+조선혁명당+한국독립당+대한독립당+신한독립당 (난징에서 5당 통합) cf.임시정부 한국국민당(1935)
*1930년대 한인애국단(1931) :임시정부 김구가 창설
- 이봉창(1932) : 일왕 히로히토 폭살기도 > 아쉽게 실패(중국 국민당 기관지 국민일보사曰, 불행)
- 윤봉길(1932) : 야채상으로 위장하여 상해사변 전승 기념식 훙커우 공원 의거(시라카와, 가와바타 숙청) > 중국에 큰 감동 > 1940 중국에서 한국광복군 창설
cf.
이봉창 의사 의거 - 윤봉길 의사 의거 사이에 상해사변 발발
훙커우 = 홍거 = 홍도
상해사변 전승 기념식 > 한국광복군 창설
도쿄에서 의거 : 김지섭(의열단, 니주바시), 이봉창(한인애국단, 일왕 폭살기도)
*국외 항일운동
- 독립군의 국내 진입작전
- 봉오동 전투(1920.6.) : 대한독립군 홍범도+군무도 독부군 최진동+국민회군 안무 > 일본군 157명 사살+300여명 부상/독립군 전사자 4명
- 훈춘사건(1920.10.) : 일본이 중국 마적단과 내통 > 공격받는 것처럼 꾸며 두만강을 넘어 북상
- 청산리 대첩(1920.10.21.~26.) : 북로군정서 김좌진+대한독립군 홍범도+의민단(천주교) > 6일간 격전(백운평, 완루구, 천수평, 어랑촌, 고동하곡 전투 etc) > 일본군 1200여명 사살+2000여명 부상
- 간도참변(1920.10.) : 전열을 재정비하기 위해 독립군이 북상하자 일본군이 민간인만 남은 간도에서 민간인 학살 > 민간이 1만여명 학살(경신참변)
- 대한독립군단(1920.12.) : 북상한 군대가 밀산부 한흥동에서 집결하여 연합(4천여명) > 총재 서일, 부총재 김좌진, 홍범도, 조성한
- 자유시 참변(1921.6.) : 소련의 적산군이 지원을 약속 > 자유시로 이동(스보보드니) > 소련군의 무장해제 요구에 대한독립군 내부 분열 > 자유시 참변으로 수많은 사상자 발생
- 통의부(1922.8.) : 자유시 참변 이후 서간도 조직(서로군정서+한족회+대한독립단etc)이 연합 > 대한통군부(1922) > 이후 통의부로 개칭하여 정식 발족(1922.8.) > 참의부/정의부로 분열
- 참의부(1923) : 육군 주만 참의부, 임시정부 직속(남만주)
- 정의부(1924) : 길림, 임시정부 참여X
- 신민부(1925) : 북만주, 자유시로 가지 않은 김좌진, 조성환 등이 신민부를 결성(대종교 계통 인사)
- 미쓰야 협정(1925) : 일본-만주 군벌 간의 협정(미쓰야-장쭤린 > 만주의 한인독립운동가를 일본 영사관에 넘기면 상금("제 2조, 중국 관헌은 각 현에 통고하여 재류 조선인이 무기를 휴대하고 조선에 침입하는 것을 엄금한다. 이를 어긴 자는 체포하여 일본 관헌에 인도한다."
- 혁신의회(1928) : 북만주, 개인위주 통합 > 한국독립당(1930) > 한국독립군(지청천)
- 국민부(1929) : 남만주, 단체위주 통합 >조선혁명당(1929) > 조선혁명당(양세붕)
cf.
4.청산리대첩의 의민단(천주교)는 천주교 관련 문제로도 출제됨
8.통의부 = 참의부(1923)/정의부(1924)/신민부(1925)
12.미쓰야협정 - 13.혁신의회 사이 국내 : 신간회(1927)
13.혁신의회와 14.국민부는 국외판 민족유일당 운동
13.한국독립군과 14.조선혁명당은 1930년대 활약
*민족말살정치 시기구분
- 만주사변 이후 : 1931 ~ 1936
- 중일전쟁 이후 : 1937 ~ 1941
- 태평양전쟁 이후 : 1941 ~ 1945
*만주사변 이후(1931 ~ 1936)
- 만주를 병참기지화 하려는 목적으로 만주국이라는 괴뢰국을 설립(만주사변1931, 만주국 1932)
- 남면북양정책 : 남쪽에는 목화재배 + 북쪽에서는 양 사육 > 공업원료 증산정책(군복)
- 농촌진흥정책(1930~40) : 조선소작조정령(1932), 조선농지령(1934) > 소작지의 임대차 기간은 최소 3년
- 조선사상범 보호관찰령(1936) : 치안유지법(1925) 위반자들이 석방되어도 계속 감시
cf. 조선농지령(1934) : 1930년대 농민&노동운동이 절정, 격렬해지는 계기
*중일전쟁 이후(1937 ~ 1941)
- 루거우차오 사건(1937) : 중국 주요도시 점거 > 제 2차 국공합작 > 난징대학살(1937.12.) > 중일전쟁 종료(1938)
- 내선일체, 황국신민화 정책 : 일선동조론
- 황국신민서사(1937) : "1. 우리는 황국의 신민이다."
- 조선어 사용 금지(1938) : 제 3차 조선교육령, 한국어 교육 실질 폐지
- 국민정신 총동원 조선연맹(1938) : 10호 단위로 애국반 조직 > 밤마다 모여 총독 명령 하달
- 국가 총동원령(1938) : "총동원한다." (짧은 선언문 아래 무수한 칙령)
- (근로)보국대(1938) : 여성 총동원령(몸빼를 입히고 노동)
- 지원병제(1938) : 육군, 해군 cf.태평양전쟁 이후 시기 : 학도지원병제도(1943), 징병(1944)과 순서 구분
- 공출 : 금속, 쌀
- 배급 : 이전에도 종종 있었지만 중일전쟁 이후 일반화됨
- 창씨개명(1939) : 일본식 성과 이름을 강요
- 신사참배 강요
cf. 6.국가 총동원령(1938)
- 공장, 사업장 관리령(1938)
- 국민징용령(1939)
- 조선 사상범예방 구금령(1941) cf. 만주사변 이후 시기 : 조선 사상범 보호 관찰령(1936)
- 국민 근로 보국 협력령(1941)
- 신문지 등 게재 제한령(1941)
- 물자 통제령(1941)
- 금속류 회수령(1941)
*태평양전쟁 이후(1941 ~ 1945)
- 국민학교(1941) : 황국신민학교
- 제 4차 조선교육령(1943) & 학도지원병제도(1943)
- 징병(1944) : 1기(1944), 2기(1945)
- 여자 정신 근로령(1944) : 정신대 cf.종군 위안부는 전쟁 시작부터 존재
cf.
지원병제(1938 : 중일전쟁 이후 시기) > 태평양전쟁 이후 시기 > 학도지원병제도(1943) > 징병(1944) : 순서
신고랑타령(화물차 가는 소리) : "신고산이 우루루 화물차 가는 소리에 정신대 보낸 어머니 딸이 가엾어 울고요 어랑어랑 어허야" = 정신대 키워드는 태평양전쟁 이후 시기
*국외항일운동
*1단계 : 한중연합작전(1931 ~ 1935)
- 만주사변(1931), 만주국(1932)으로 중국의 반일감정 고조 cf.1932 : 이봉창 의사 의거, 상해사변
- 한국독립군(혁신의회, 지청천) : 쌍성보, 대전자령, 사도하자, 동경성 전투 w.중국 호로군
- 조선혁명군(국민부, 양세봉) : 영릉가, 홍경성 전투 w.중국 의용군
cf.
한국독립군 vs 조선혁명군 구분
한중 연합이 가능했던 이유 : 만주사변, 만주국

*2단계 : 항일유격투쟁=게릴라전(1935 ~ 1940)
- 조선의용대(1938) : 조선혁명당(1935, 의열단+4개조직 연합)에서 김원봉의 독주 > 뜻을 달리하는 사람들은 탈당 > 남은 사람들이 조선민족혁명당(1937)개설 > 호가장 전투(1941),반소탕전(1942)
- 동북 항일 연군(1936) : 조선인 사회주의자 + 중국인 사회주의자, 이중 조선인 간부들이 조국광복회(1936~38) 설립 > 보천보 전투(1937, 김일성)
*3단계 : 한국 광복군(1940 ~ 1945)
- 윤봉길 의사 훙커우 공원 의거를 계기로 중국 정부가 지원
- 전시체제 확립(1937) : 중일전쟁(1937)을 계기로 독립전쟁 개시 선언
- 한국독립당 창당(1940) : 한국국민당(김구)+한국독립당(조소앙)+조선혁명당(지청천)이 모인 3당 통합(우파 통합)
- 주석제로 전환(1940) : 충칭에 정착 완료, 국무위원제 > 주석제, 주석에 김구 취임, 행정부 기능 강화(헌법개정)
- 한국광복군 창설(1940) : 총사령관 지청천(=이청천), 참모장 이범석, 초기에는 중국 군사위원회의 지휘를 받음, 김구 <광복군 선언문>
- 대한민국 건국강령(1941) : 조소앙의 삼균주의(개인=정치/경제/교육 균등, 민족균등=민족 자결, 국가 균등), "이른바 보통선거를 실시하여 정권을 균히 하고, 국유 제도를 채용하여 이권을 균등하게 하고, 공비 교육으로써 학권을 균히 하여~"
- 조선민족혁명당 합류(1942) : 김원봉 세력 합류, 조선의용대 일부 합류
- 민족주의, 사회주의 통합 정부 수립(1944)
- 한국광복군 활동 : 2포고(일본,독일), 3연합(중국, 영국, 미국) cf.2차 세계대전, 이탈리아는 이미 항복한 시점
*한국광복군 활동
- 대일선전포고(1941) : "한국 전 인민은 이미 반침략 전선에 참가하여 ~ 추축국에 대하여 전쟁을 선포한다.", "1910년 합병조약과 일체 불평등 조약의 무효를 거듭 선포하며 ~"
- 연합군과의 연합작전 : 중국 국민당군과 연합, 미얀마&인도 전선에까지 파견되어 영국군과 연합 cf.중국 공산당 팔로군X
- 국내진공작전 : 국내 정진군을 만들어 미국 전략 정보국(OSS)과 연합(1945.9.시행 예정) > 1945.8.15. 일본 무조건 항복 cf. 부주석제도 이후
cf. 연통제, 교통국은 상해 정부에만 존재
*민족문화 수호운동
*한글의 연구와 보급
- 국문연구소(1907) : 대한제국, 주시경&지석영, 국문정리와 국어의 이해 체계 확립
- 조선어 연구회(1921) : 국문연구소 계승, 가갸날 제정(1926, 한글날의 기원) cf. 주시경&지석영 선생은 이미 사망
- 조선어학회(1931) : 한글맞춤법 통일안 발표(1933), <우리말 큰사전> 편찬 시도 cf.완성X, 이후 한글학회가 1949에 완성)
- 조선어학회 사건(1942) : 1940년대 민족말살정치 강화로 이극로, 최현배(주시경&지석영 제자) 등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체포+이윤재&한징 옥사
cf. 오답 선지 : 조선어학회와 가갸날, <우리말 큰사전> 완성
*한국사
*식민사관 전파 및 역사 왜곡
- 조선사 편수회(1925) : 박은식이 국권피탈 과정을 적은 <한국痛사>(1915)를 편찬하자 조선 반도사 편찬 위원회(1916)을 만들어 역사왜곡 시작, 계속 이름을 바꾸다 마지막에 '조선사 편수회'가 됨
- 청구학회(1930) : 한국사 왜곡
*1920` 민족주의 역사학
*박은식
- 조선 국혼(조선 정신)
- <한국痛사>(1915) :일제 조선사 편수회 설치 계기
- <한국 독립운동 지혈사>(1920)
- <안중근전>
- <유교구신론>(1909) : 서북학회 월보에 게시하여 양명학에 토대를 둔 개혁 주장 cf.유교 관련 문제로 출제, 구신=개혁
- 임시정부 2대 대통령(1925)
*단재 신채호
- 고대사, 민족주의 역사학 기반 확립
- <조선 상고사>(1931) : "역사라는 것은 我와 非我의 투쟁의 기록이다."
- <조선사연구초>(1929) : 사대주의 비판, 묘청의 서경천도 운동 재평가("조선 역사 일천년래 제일대 사건"), 남가사상(화랑 정신) 체계화(묘청이 화랑 정신을 계승했다고 봄) cf. 묘청 서경천도 운동 : 대화궁, 대위(국명), 천개(연호)
- <독사신론> : 대한매일신보에서 연재(역사를 읽는 새로운 주장), 부여, 고구려, 발해 중시, 김규식의 <삼국사기>는 한반도 남쪽 역사에 치중한다고 비판, "東國主族 단군의 후예"(만주를 한반도 영토로 인식)
- 신문 <신대한>(1919) 창간 : 임시정부의 독립신문 비판
- <조선혁명선언>(1923) : 의열단 선언 작성 cf.약산과 단재
- 국민대표회의(1923) : 창조파, 대종교, 무정부주의
- 영웅전기 : <을지문덕전>, <최영전>(=최도통전), <이순신전>
*1930` 조선학 운동
- 조선 후기 실학의 성과론 연구 및 보급
- 문일평 : 조선心, 세종대왕&한글 강조, <한미50년사>(대미관계 50년사)
- 안재홍 : 민족정기, <조선상고사감>, 광복 후 건준위 결성에 참여하여 국민당 창당(1946.9.), 신민족주의+신민주주의
- 정인보 : 조선의 얼("5천년 간 조선의 얼"), <조선사연구>("누구나 어릿어릿하는 사람을 보면 '얼'이 빠졌다고 하고~") cf.신채호<조선사연구초>
*사회경제사학&실증사학
- 사회경제사학(=유물사관) : 백남운 <조선사회경제사>, <조선사회봉건사회경제사> (한국사가 세계사 발전의 법칙에 입각해 발전했음을 강조, 식민사관의 정체성론을 비판)
- 실증사학 : 진단학회(1934, 이병도+손진태가 조직한 순수 학술단체), 손진태<조선민족사개론>에서 신민족주의 사관(계급투쟁+민족주의), "계급투쟁은 민족의 내부 분열을 초래하는 것이며 ~ 민족 ~ 민족 ~ 계급투쟁 ~ 민족 ~ "
cf.
이병도는 조선사 편수회에서 일함
신민족주의 : 손진태(일제강점기), 안재홍(광복 후)
*종교
*천도교
- 일진회가 동학 흡수(1904)
- 손병희가 동학을 개칭하여 천도교 창설(1905)
- 만세보 발행(1906) : 오세창, 1906~07 이후 친일 신문으로 변질
- 잡지 <개벽>(1920), <신여성>(1923), <어린이>(1923)
- 또 한번의 3.1운동 계획(1922) : "지난 기미년의 기억~"
- 소년운동 : 어린이, 어린이날 제정
*유교구신론
- 박은식 : 서북학회 월보에 개제
- "유교가 끝내 인도의 불교와 서양의 기독교와 같이 세계의 대발전을 하지 못함은 어째서이며, 근세에 이르러 침체부진이 극도에 달하여 거의 회복할 가망이 없는 것은 무슨 까닭이뇨. ~ 유교계의 3대 문제가 있는지라 ~ "
*1920` 신경향파 문학
- 문학의 사회적 기능을 강조 : 1920 중반, 사회주의와 연관
- 카프(KAPE, 조선 프롤레타리아 예술가 동맹, 1925) : 이상화<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>, 잡지 <개벽>에 수록(1926.6.) cf. 6.10만세운동과 같은 시기
*1930` 현실도피적 순수문학
시문학(1930) 창간 : 동인(정지용, 김용랑 등)
*음악
- 가곡, 동요(민족정서 표현) : 윤극영<반달>(1924) "푸른 하늘 은하수 하얀 쪽배엔 ~ "
- 안익태(해외 활동) : 코리아 환상곡(1936) 애국가
*미술
- 한국전통회화 : 안중식, 허백련
- 서양화 : 이중섭(민족정서가 짙은 소 그림)
*연극
- 토월회(1923), 극예술 연구회(1931) : 오락성을 지양하고 민족의 각성을 촉구하는 연극운동(신극운동), 현실과 이상을 모두 중시함
*영화
- 저항정신 : 나운규의 아리랑(1926)이 단성사에서 개봉(나운규 감독, 각본, 주연)
- 최초의 영화사 : 조선 키네마 주식회사(1924) cf.아리랑이 여기서 나옴
- 일제의 영화 산업 탄압 : 조선 영화령(1940)
*주거
- 토막촌 : 도시 외곽 빈민 주거지
- 상류층은 문화주택, 중류층은 개량 한옥, 중하류층은 영단주택